[2020년 회고록] 쓸까말까 고민하다가 마지막 날에 급하게 작성하는 회고록 2

20년 전체 회고록

들어가며

사실 쓰고 싶지 않았다. 9월에도 그래서 안썼다.
회고록도 안쓰려고 했으나, 25분이 남으니 괜히 쓰고 싶어져서 먼지 쌓인 블로그를 다시 열었다. 두서 없이 기억에 남는 몇 가지를 작성했다.

Fxxkin’ COVID-19

우리 로나 태어난 지 1주년~ 왜 태어났니~ 왜 태어났니~😡

철저히 짓밟혔다, 내가 세웠던 모든 계획들은.
앨범을 보니 한 게 아무 것도 없다. 일 년을 고스란히 날려버린 것 같아서 기분이 좋지 못하다.

나는 ㅈ됐다.

아무래도 ㅈ됐다. 
그것이 내가 심사숙고 끝에 내린 결론이다. 
나는 ㅈ됐다.

- 소설 '마션' 첫 세 문장.

항상 큰 결정에 대한 나의 선택은, 뒤돌아 생각해봤을 때 항상 옳았다고 느꼈다. 덕분에 좀 더 나은 내가 됐다라고 생각했었다. 작년까지는.

나는 슬럼프에 빠졌다. 회사에서 노트북 하나 들고 내내 골방에 박혀서 왜 이렇게 됐을까 고민하는 시간이 늘어갔다. 원인은 알고 있었다. 내 업무 퍼포먼스가 너무 안나온다는 것.

18년 가을, 나는 앞으로 무슨 포지션으로 일을 하고 싶을까에 대한 충분한 고민을 했다고 생각했고, 머신러닝 엔지니어라는 포지션으로 변경하기 위해 공부를 시작했다. 그리고 생각보다 빠르게 기회가 찾아왔다.

머신러닝 엔지니어로 시작한 첫 두 달은 괜찮았다. 가자마자 꽤 큰 프로젝트를 맡았고, 회사가 진행하는 프로젝트에 큰 도움이 되기 위해 주말도 반납해가면서 개발했다. 재미있었다. 정말 포지션 변경을 잘 한 것 같다고 느꼈다.

그 프로젝트가 잘 마무리된 이후, 신이 나서 이것 저것 많이 제안도 해보고 나름 성과를 내기 위해 노력했으나, 점점 힘들어지는 회사에 내가 무언갈 해줄 수 있는게 없다라고 느끼기 시작했다. 그 때부터 여태까지 받지 못했던 또 다른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다.

병역특례가 끝남과 동시에 권고사직을 받고, 두 달 정도 방에 틀어박혀서 참 많은 생각을 했다. 내가 이 길을 계속 해도 되는게 맞을까? 내가 이 일을 좋아하는게 맞는건가? 나는 연구보다 개발을 좋아하는걸까? 아예 개발 말고 다른 일을 시작해봐야하는걸까?

처음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이런 고민들을 이야기하면서 어떻게 해결하는게 좋을지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가장 마음에 드는 조언은 뭐라도 해라 였다. 너무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 뭐라도 하면서 이게 나한테 맞을지 아닐지를 결정해보라는 이야기였다.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바로 패스트캠퍼스에서 iOS 올인원 패키지를 결제해서 밤새도록 들었다. 그 다음에는 그 동안 못읽었던 책도 읽고, 그 때 그 떄마다 하고 싶다고 느끼는 것들은 바로 했다. 그러면서 잔걱정이 많이 사라졌다.

지금도 슬럼프를 완전히 벗어나진 않은 것 같다. 여전히 고민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도 하고싶은 것을 계속 찾아서 하고 있다. 하지만 예전처럼 불안함은 덜해졌다. 어떻게든 되겠지.

우주에서는 자신의 마음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언젠가는 모든 것이 틀어지고, 이젠 끝이구나라는 생각이 들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 곳에서 죽을 것이 아니라면, 문제를 해결해나가면서
또 다른 문제가 생기면 그것을 해결하고,
또 다른 문제가 생기면 또 그것을 해결하고,
그러다보면 언젠가는 지구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 소설 '마션' 마지막 세 문장.

인생을 바꾸진 못할 20분. 그래도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을 위해

이번 학기 복학 안하면 제적이라고 해서 복학했다. 학점은 다 채웠는데, 장학금을 받으려면 최소학점은 이수해야한다고 해서, 대충 전공 두 개 정도 넣었다.

두 개 중에 하나가 취업을 준비하는 4학년들을 위한 강의였는데, 본인들이 관심있어하는 분야에 대해서 조사하고 발표하는 과제를 줬던 모양이다. 대강 골라서 해야지 했는데, 저녁에 교수님한테 연락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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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지금 내 갈피를 못잡고 있는데..

그래도 좋은 경험이 될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항상 내 스스로에게 아쉬운 부분이라고 생각했었던 부분들을 간추려서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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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5년차인데 뭐했나 나는

제목은 듣는 사람에게도, 나에게도 해주고 싶은 이야기로 제목을 정했다. 발표가 끝난 뒤에 한 친구가 개인적으로 연락을 해서 간단하게 이런저런 질문을 했다. 보통 이런거 하면 질문 잘 안하던데, 질문하는 사람이 있는 걸 보니 잘 전달이 되긴 했구나 싶어서 괜히 뿌듯했다.

무모한 도전

운동을 못하니까, 출퇴근 시간에 따릉이를 타고 다니면 좋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날씨도 좋았으니까.

우선 출근 시간에 타면 시간이 정확히 얼마나 걸리는지 모르니까, 퇴근시간에 한 번 타고 가봐야겠다 싶었다. 지금 아니면 언제 해보겠어~ 하면서 강남역에서 자전거를 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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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지도 보면서 갔다. 교대까지는 기분 좋았다. 적당히 바람도 불고, 힘들지도 않았고 참 좋았다. 40분 정도면 느긋하게 집에 도착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근데 교대부터 낙성대까지가 지옥이었다. 무한 오르막길…(낙성대가 절정이었다) 위험한 상황도 좀 있었고.. 결국 한 시간 반 만에 집에 지친 채로 도착했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차도가 아니라 자전거길로 검색해서 와야 좀 편하다는 걸 알았다.

다음번에는 자전거 추천 코스로 한 번 타봐야겠다.

마치며

사실 12월 31일에 마감했어야했는데, 벌써 1월 1일이다. 늦었다. 나가질 못하니 잡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못했던 2020년이었다. 올해는 백신도 많이 상용화가 될테니, 마음 편히 마스크를 벗고 하고 싶었던 것들을 할 수 있는, 그런 2021년이 됐으면 좋겠다.